갈라디아서 2장 20절
한미 자유무역협정, 곧 한미 FTA 협상 시간이 연장되어 지금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려고 하면 협상과 타협은 불가피합니다. 일방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는 타협하며 살고 협정을 맺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살든지 그리스도가 살든지 둘 중에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바울은 “나는 주님의 십자가와 함께 죽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살아있는 생명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바울의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있었으나 십자가를 기점으로 중심이 “그리스도”로 바뀐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내 안에 내가 살아있습니까 그리스도가 살아 계십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첫째,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것은 부활의 능력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 가운데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망이 예수님을 그 사망 가운데 계속 붙들어 매어 두려고 했으나 예수님이 가지신 생명의 능력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행 2:23-24).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은 죽음의 귄세를 이긴 능력의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능력으로 우리는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이기고, 모든 결박을 풀어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것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은 사랑의 생명입니다. 그 사랑은 자기 몸을 우리 위해 버림으로서 증명해 주셨습니다. 바울도 버림으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준 생애를 살았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사신다면 그것은 곧 희생하는 사랑의 삶이어야 합니다.
셋째,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것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본문에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의 삶은 환경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으나 그 대륙 안에 있는 강, 호수, 숲, 넓은 땅, 금광 등 모든 보물을 다 알고 누린 것은 아닙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은 피상적인 것에 불과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의 생명이 내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놀라운 삶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리의 신앙은 피상적인 것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이 피상적인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의 부요함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