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2007.04.29] 네 믿음을 보이라
  • 김성국 목사
  • 2007.04.29
야고보서 2장 14-22절
미국을 방문 중인 아베 일본 총리가 미국의회 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전에도 없는 용어를 써서 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의 느낌(sense of apology)”이라는 단어입니다. 일본총리의 “사과의 느낌”이란 단어보다 황당한 단어가 기독교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란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원래 있을 수 없는 단어입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선한 행함을 동반합니다(엡 2:8-10). 기독교는 예수 믿고 죽어서 천국 간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겐 “어떻게 믿느냐”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자들에게도 이익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14-16). 곡물을 벨 때 밭모퉁이까지 다 베어서는 안 되고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는 안 됩니다. 이것들은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한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레 23:22). 하나님이 가난하고 나그네 된 자들을 이 땅에 놔두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을 보고 우리의 옛 모습을 기억하라는 것이요 그들을 도우므로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신 24:19-22). 오늘 본문은 우리의 믿음을 보여 달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18절). 믿음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영역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행동으로 보여 져야 합니다. 사실, 믿음이 행동이란 순종으로 나타나기까지 누구에게나 어려운 갈등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두고 갈등하셨습니다. 그는 갈등을 이기고 순종하셔서 구원의 놀라운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사람들을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해도 결국 십자가를 지는 행동이 없었다면 아무 역사도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믿음이 행동이 될 때 놀라운 일들이 벌어 집니다. 에스더도 왕 앞에 나갈 것인가, 갈등하다가 행동으로 나아갈 때에 민족을 구원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행동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함께 하십니다(요 8:29). 예수님처럼 에스더처럼 갈등을 넘어 순종의 길로 나가십시오. 위대한 행동이 없이 위대한 믿음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보여 지는 믿음입니까? 주님에게, 교인에게, 가난한 자들에게, 자녀에게, 그리고 모든 영역에서 보여 지고 있습니까? 혜천대학교회의 모든 교우들은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산 믿음, 말만의 믿음이 아니라 행동하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