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40장1~8절
나무속에 있는 나이테를 들여다보면 그동안 나무가 겪었던 모든 일들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가물었을 때, 번개를 맞았을 때, 병충해가 있었을 때, 숲에 불이 났었을 때, 정상적이었을 때, 나무는 그 중심에 온갖 상처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마음에도 온갖 아픔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상처 다른 사람들이 심어 놓은 상처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픔을 위로하고 싶어 하십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위로하라는 명령이 다급하게 두 번이나 반복 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꼭 위로하고 싶으시다는 것입니다. 꼭 위로를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꼭 위로를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2절 상반절에 보면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고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은 파괴된 도시입니다. 상처가 많은 도시입니다. 소망이 없는 도시입니다. 상처가 많고 소망이 없는 인생들의 마음에 위로를 전하라는 것입니다. 위로의 내용은 고통당하는 자에게 문제는 다 해결되었고 어려움은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어려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엄청난 하나님의 위로의 메시지를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산같이 교만하게 버티며 나는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치 않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누구도 나의 큰 상처를 위로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상처와 아픔과 고통을 가지고 깊은 골짜기 아래 내려가 계속 앉아 있습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 가운데 교만의 산은 낮추고 낙심의 골짜기는 돋우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위로를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이 보내신 위로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르는 풀과 같고 시드는 꽃과 같이 약하고 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는 수많은 상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수많은 상처와 아픔에 주저앉아 있는 우리들을 위로하시고 일으키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위로자이십니다.
날 위로하시는 예수님은 나 보다 더 상처와 아픔이 있습니다. 나의 아픔을 잘 아시는 그의 품에 안기면 참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40장에 따르면 목자의 품에 모든 것을 맡긴 온순한 양(11절), 폭풍 위를 날아오르는 강한 독수리(31절) 이 두 가지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위로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뿐 아니라 성처와 아픔의 사람들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다른 자들을 위로할 때 말씀을 가지고 위로하십시오. 약한 인생일수록 강하게 일어나 사는 길은 말씀밖에 없습니다. 위로는 슬픈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는 감정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위로는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아예 삶을 바꿉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통해 더욱 따듯해지고 삶이 변하는 역사가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김성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