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2008.12.14] 위대한 용서
  • 김성국 목사
  • 2008.12.14
창세기 50장 15~21절
12월 마지막이 다가 옵니다. 인생 마지막엔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성경은 용서가 중요하다고 말씀합니다(빌립보서 4:5). 사실 하나님의 용서가 없었으면 기독교도 없고 누구도 천국에 못 갑니다. 히브리어의 용서(나사)라는 단어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다, 잊다, 치워주다, 받아들이다, 도와주다, 공급하다, 그리고 높여주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위대한 용서의 이야기를 담은 오늘 본문에 그 옛날 요셉에게 큰 상처를 주었던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기 전에 요셉이 형들을 용서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말합니다. 사실 용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입니다. 용서는 용서하는 자신에게 아주 큰 유익이 있습니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자기에게 상처 준 자들을 원망해보라고 했을 때 혈관과 심장에 좋지 않은 반응이 나왔고 반대로 용서를 상상하라고 했는데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신경 조직의 활동이 활발해졌다는 것입니다. 용서를 선택하면 어찌할 수 없는 과거로부터 자신이 해방되어 새로운 미래를 향해 가게 됩니다. 용서는 자기에게 상처 준 자를 조건 없이 해방시켜 주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이 갈등과 반목과 싸움의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위대한 용서 입니다. 요셉은 위대한 용서의 사람입니다. 그는 무엇보다 심판은 하나님의 몫이지 자기 몫이 아닌 줄을 알았습니다(19절/참조 롬 12:19-20). 요셉은 형들이 행한 악을 큰 시각으로 볼 줄 알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있었기에 형들을 미워하지 아니하고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눈물로 그들의 형들을 용서했습니다(17절). 요셉은 또한 따듯한 말로 그들을 용서했습니다(21절). 그리고 그는 형들과 형들의 자손들을 기르겠다며 행동으로 그들을 용서했습니다. 용서는 감동을 주는 행동 입니다. 다윗은 자기 원수 사울의 손자 절뚝발이 므비보셋을 찾아 자기의 상에서 먹게 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감동적인 장면이 벌어지게 하는 것이 용서입니다. 지난 12월 8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에서 미국 전투기 추락했을 때 독실한 크리스천인 윤동윤씨는 아내와 두 딸과 장모를 잃었습니다. 그는 사고를 일으킨 미국 조종사가 찾아오지도 않았는데 얼마나 조종사가 힘들겠냐며 눈물을 흘리며 위대한 용서를 선언하므로 온 세상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세상은 미움과 분노와 싸움으로 가득합니다. 가정 사회 국가 심지어 교회 안에도 갈등이 넘칩니다. 용서는 그 모든 것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반목의 땅에 위대한 용서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품고 위대한 용서로 세상을 바꾸는 용서의 사람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