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2008.12.07] 왜 여호와의 싹이 이 땅에 심겨졌는가
  • 김성국 목사
  • 2008.12.07
이사야 4장 1~6절
본문 1절에서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있는 처절한 모습을 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바로 앞 구절에 보니 남자들이 전쟁에서 많이 죽어 남편을 얻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참담함은 이것뿐이 아닙니다. 이사야 1장 6절의 표현대로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오늘의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인 경제파탄, 인도 뭄바이 테러사건, 또 다시 이천 물류 창고 화재 등으로 한 해의 끝자락까지 온 세상이 어려움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어두움과 죄악이 세상을 이기는 것 같습니다. 절망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곳도 소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참 놀라운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절망과 고통의 땅이 아름다움과 영화스러운 땅으로 바뀐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이런 변화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여호와의 싹이 소망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싹은 작고 연약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싹 또는 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시는 이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 여호와의 싹은 더러움을 씻으며 거룩함과 청결함을 가져다줍니다(3-4절).스가랴 3장 8-9절에 보면 여호와의 순이 죄를 하루에 제하여 버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험한 십자가가 한 날에 이룬 죄사함의 사건을 말합니다. 본문 5절에 보면 여호와의 싹이 낮이나 밤이나 모든 열방에 우뚝 설 것을 말합니다. 연약해 보이던 싹이 만민의 기준이 됩니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싹이 이 시대의 모든 이가 우러러볼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또 본문 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싹은 천막이 되어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이 되고 풍우가 일어날 때는 피하여 숨는 곳이 된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싹이 천막, 곧 여호와의 전을 만든다는 것은 스가랴 6장 12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싹으로 교회를 만드시고 그곳에 머무시면서 그의 백성들의 그늘과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교회는 아주 미미한 곳 같으나 주님이 함께 거하시면서 고난을 당하는 그의 백성들의 도움이 되십니다. 위로가 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의 주님이 그 이름으로 오신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임마누엘이란 뜻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면서 우리 편이 되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죄악이 있습니까? 올해가 다 지나기 전에 험한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삶의 방향과 기준이 없습니까? 여호와의 싹, 만민의 기호이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고난이 넘쳐 내 목까지 찼습니까? 근심하지 말고 임마누엘이신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소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호와의 싹이 이 험한 시대의 유일한 소망이고, 주님이 함께 계신 교회가 또한 소망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소망으로 가득찬 나날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