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2008.07.13] 시내가 마르니라
  • 김성국 목사
  • 2008.07.13
열왕기상 17장 7-9절
지금 여러분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엘리야는 말씀과 늘 가까이 있었습니다. 말씀의 사람 엘리야에게 큰 어려움이 왔습니다. 말씀 따라 머물던 그릿 시냇가가 점점 말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방 땅 시돈의 사르밧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시돈은 그 당시 천하를 쥐고 흔들었던 이세벨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머물면서 과부의 공궤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지만 엘리야는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준비도 해 놓으셨습니다. 그릿 시내는 말랐으나 엘리야를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험한 장소에서 새로운 은혜를 예비하신 하나님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오늘날 교회에 마른 것이 있습니다. 사랑, 기도, 감사, 찬송, 용기, 전도, 경건, 공의, 열심, 봉사가 말랐습니다. 그 중에 꼭 있어야 하는데 철저히 말라 버린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눈물입니다. 기독교는 눈물의 종교입니다. 눈물 없이 못가는 길이 주님 따라 가는 길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마른 눈으로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도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면서 많이 우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바라보시고 우시고 죽은 나사로를 보고 우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에는 예수님이 육체로 계실 때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늘 눈물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죄를 회개하며 침상이 적셔지기 까지 울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음을 통보받고 눈물로 기도하여 생명을 15년이나 연장 받았습니다. 눈물의 기도는 아버지의 마음을 적십니다. 우리의 눈물은 어디서 회복될 수 있을까요? 아이작 왓츠는 십자가 앞에서 이런 묵상을 했습니다.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눈물을 회복시키는 곳입니다. 눈물은 말랐던 다른 것들도 함께 소생시킵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죄를 녹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적시며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만들 눈물을 회복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