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6장24-28절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어떻게 하든지 뭔가 더 잘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성을 들여 키운 아이가 머리가 컸다고 대들고 부모를 업신여기고 부모 대신 엉뚱한 자들의 말을 듣고 다닌다면 어떻게 그 아이를 다루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죽어가는 핏덩이였던 자를 구원해 씻기고 먹이고 입히어 성숙한 자녀로 삼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감사는커녕 대들고 죄짓고 우상을 섬기는 모습을 보고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는 철저한 징계요 그 후에는 온전한 회복이라는 방법을 쓰신 것입니다. 철저한 징계로서 이스라엘은 결국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방법인 온전한 회복으로서 하나님이 제시한 것은 이스라엘을 “성령의 사람”으로 재창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의 사람에 대한 예언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는 다름 아닌 그 속에 성령 하나님이 들어와 사시는 사람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들어와 사시겠다는 예언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일 뿐 아니라 예수님도 성령님이 오시면 너희 가운데 거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16-17).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람과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람 속에 들어가 사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사실뿐 아니라 사람 속에 들어가 사십니다. 함께의 삶이 안에의 삶으로 확대되는 것입니다. 이 예언되었던 성령의 사람은 드디어 신약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이 땅에 그 모습을 드디어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엄청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과 사역 속에서 성령님이 확실하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번 홍수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엄청난 위력이 전혀 실감나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내주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성령님의 사역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닌데 예배도 기도도 찬양도 봉사도 모든 생활도 덤덤합니다. 종교적인 형식과 언어는 있지만 불신자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님의 내주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성령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습니까? 주님의 성전을 사모하고 죄악 대신 거룩을 갈망하는 자,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자 속에 성령님은 거처를 삼으십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말씀에 순종하기를 기뻐합니다. 봉사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즐겁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회복됩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을 갈망하십니까? 오래 사는 것, 잘사는 것을 꿈꾸지 마시고 성령의 임재를 드러내며 살기를 갈망하십시오. 이 어두움과 좌절의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은 바로 성령의 사람입니다. 모두가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