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장 2~6절
요한의 고백과 질문 사이
(마태복음 11장 2~6절)
세례요한은 모태 신앙입니다. 이미 모태에 있을 때 성령이 충만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낙타털 옷,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화려함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광야는 빈들입니다. 인적이 없고 바람소리, 짐승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곳입니다. 외롭고 쓸쓸한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제하기에 최고의 장소입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무슨 소리도 없이 오직 하나님과 나만이 교제할 수 있는 축복의 장소 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광야 생활을 하였습니다. 모세, 다윗, 예수님, 바울 등이 말입니다. 세례요한은 그곳에서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사람들은 갈증으로 목말라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지도자에 목말라 있었습니다. 민족의 해방자를 목 놓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몰려들기 시작 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세리들과 군병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모두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무리들이 요한을 따랐 습니다. 요한은 지금까지 그 어느 지도자와도 달랐습니다. 최고의 메신저요, 시대의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에게는 너무도 겸손하였습니다. 바리새인 유대인들이 ‘네가 누구냐?’라고 물을 때 ‘나는 내 뒤에 오시는 예수님의 신들메를 풀기도 못 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을 보았을 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메시야로 위대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이 고백에 그의 제자 안드레가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안드레는 그의 형제 베드로를 주님께 인도하였습니다. 세례요한 자신은 서서히 잊어져 가는 존재가 되었고 예수님의 명성은 날마다 높아져만 갔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그런 시점에 유대 전국을 흔들만한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유대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가 친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하였습니다. 유대 법이나 율법에 용납이 안 되는 가장 뜨거운 정치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세례요한은 헤롯에게 찾아가 왕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였고 결국 감옥에 갇혔습니다.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의하면 지하 토굴에 갇혔습니다. 주님도 이미 이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찾아가셨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심지어 제자들조차 보낸 기록이 없습니다.
그 후 요한의 심경엔 변화가 생겼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 예수, 그러나 이제는 주님에 관한 사역의 소식을 들었지만 그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요한은 제자들을 보내어 이런 질문을 하게 합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요한의 이 질문에 저는 전율을 느낍니다. 요한은 더 이상 예수님을 메시야로 확신하지 않고 실족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나 물질,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는 실족을 당한다 할지라도 메시야이신 예수님에게는 실족 당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규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