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2009.11.08] 왕의 귀환
  • 김승준 목사
  • 2009.11.08
사사기 21장 25절
‘왕이 없다’. 사사기에서 이 표현은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오늘의 상황에서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사사기가 쓰여 졌던 고대근동아시아에서 왕은 곧 나라를 뜻하기에 ‘왕이 없다’라는 표현은 그 나라가 없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호와를 나타내며 살아가야 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왕이신 하나님은 아니 계셨던 적이 없으신데 그 땅에 ‘왕이 없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스라엘이 언약백성으로서의 삶이 깨어졌기에 하나님 나라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는 말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로 살 수 있는 자들이며 언제든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다짐대로(수24: 18,21,24-여호와만을 섬길 것이다.) 살지 못했다. 그들의 다짐과 결심은 상황에 따라 너무도 쉽게 무너짐을 보게 된다. 그들에게 있어 신앙은 생활의 한 방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세상적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한 채 신앙을 더 추가한 것뿐이다. 이스라엘에는 바알이 있고 아세라가 있으며 여호와가 있다. 필요에 따라 찾는 대상이 다르다. 신앙의 근거가 왕이신 하나님께 있지 않고 필요에 따라 달라지는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여호와 신앙이란 단지 자신들이 필요로 할 때 복을 내려주는 미신적 신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자신들의 깨진 삶을 채워줄 자기만족의 신앙이 바로 이스라엘의 신앙이다. 하지만 깨진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를 붓는 것이 신앙이 아니다. 오히려 깨어진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풍성함이 들어가는 것이 신앙인 것이다. 내가 주인으로 믿음조차도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왕이신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인도함을 받는 것이 신앙이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서 왕이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기 다음에 나오는 모압 여인 룻에게서 신앙을 배워야 한다. 룻은 텅빈 삶을 사는 여인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을 다짐한다. 그 여인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이삭을 줍는다. 처음엔 타작마당에서 떨어진 이삭을 통해 자신의 삶을 채우며 하나님의 초청을 받는 룻. 서서히 그는 이삭을 소유한 여인에서 그 자신이 타작마당의 일부가 되는 인도함을 받는다. 이삭을 줍는 여인에서 타작마당으로 들어가는, 언약백성으로(보아스와 결혼) 살아가는, 진정한 왕의 통치아래 움직이는 여인이 된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믿음의 삶이다. 우리에게는 약속(언약)이 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터전(땅)이 있다. 그럼에도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다면 우리의 삶도 ‘왕이 없다’라는 사사기의 평가를 받을 수 밖에서 없다. 내 인생의 왕이 내가 아니라 하니님이심을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고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직장, 학교, 가정, 자녀교육, 인간관계)을 주 안에서 행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의 모든 삶이 내 개인적 삶이 아니라 왕이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로서 역사됨이 이뤄질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풍요자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