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장 9-16절
우리의 삶에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예수님을 바로 알기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고(요 17:3), 넘치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벧후 1:2), 또 강하고 용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단 11:32). 그렇다면 예수님을 어떻게 잘 알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아는 것은 머리로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알아야 하고 체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요한은 예수님을 가슴으로 체험으로 알았습니다.
첫째, 요한은 예수님의 일에 동참하여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요한은 예수의 환난과 나라에 동참하는 자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일에 동참하여 예수님의 고통, 인내, 그 사랑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구경꾼이 되어서는 결코 예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기도 모임에, 교회 일에, 복음을 전하는데, 구역예배에, 제자훈련에 동참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일에 동참할수록 예수님을 더 잘 알게 됩니다.
둘째, 요한은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10절에 보면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요한은 주일 날, 말씀 가운데 새로운 사명을 받았습니다. 요한은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뜻을 더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매 주일의 말씀은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과 예수님의 뜻을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요한은 눈으로 보고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위엄과 아름다우심과 교회를 사랑하심 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눈으로 직접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만 성경은 우리에게 영적인 눈을 떠서 예수님을 바라보라(히 12:2)고 말씀합니다. 유명한 찬송가 작가인 아이작 왓츠는 1674년도에 태어난 사람이지만 이런 찬송시를 썼습니다. “못 박힌 손발 보오니 큰 자비 나타내셨네. 가시로 만든 면류관 우리를 위해 쓰셨네.(찬 147장)” 바로 자기의 눈앞에서 십자가를 본 것 같이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본 것입니다. 우리도 영적인 눈으로 사도 요한이 본 예수님,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더 알아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아는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이십니까? 우는 자의 위로가 되며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임이 되고 잡힌 자의 놓임이 되는 살아계신 예수님이십니까? 이 예수님을 머리로만이 아니라 가슴과 체험으로 알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담대하고 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아 영생의 삶, 은혜와 평강의 삶, 강하고 용맹한 삶의 주인공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